[칼럼]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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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다?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다. 요즘 애들은 애들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요즘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보다 영악해진 것 것일까?
현재 기록과 협의를 위해 방문하는 직장보육 시설에서 만난 은진이(가명, 한국 나이 5세)는 내가 첫 방문한 날 나에게 재미있는 실험을 해왔다. 그때 난 역할영역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놀이를 전개하는지 기록을 위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난 사진찍기와 메모들을 하며 아이들에게 되도록 영향을 주지 않고 싶었기에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나를 의식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아이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낯선 내가 넓지 않은 공간을 자리잡고 앉아 있다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진이는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은진 : 선생님 뭐해요?
김희정 : 응 너희들이 재미있게 노는 것 같아서 그걸 좀 적고 있어.
은진 : 아… 네.
은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혀끝을 조금 내밀어 미니 애롱을 시도했다. 나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오늘 처음 이곳에 온 외부인으로서 아이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교사로서 아이를 지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약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내 마음 속에 ‘아, 내가 아이에게 메롱을 받다니’ 난 약간 혼란스러운 문화충격과 괘씸한 마음이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진이는 연이어 나에게 혀끝을 내미는 행동을 했지만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다시 놀이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다기 같은 교실에 방문하였다. 이때 은 진 이는 아침 간식을 먹기 위해서 손을 씻고 있었다. 내가 먼저 은 진 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김희정 : 안녕 은진아~ 간식 먹으려고 손 닦는구나!
은진 : 선생님 왔어요?
은진이가 밝게 나를 맞이한다. 그런데 그러더니 다시 혀끝을 조금 내밀어 미니 메롱을 한다. 이쯤 되니 난 아이가 너무 재밌었다. 담임교사는 아니지만, 분명 원장님과 담임교사는 친구가 아닌 교사로 소개를 받은 사람에게 이렇게 미니 메롱을 하는 이유는 뭘까?
김희정 : 은진아~ 그런데 있잖아. 그거 알아? 선생님 메롱 별로 안 좋아한다.
은진 : (약간 놀란듯한 표정으로) 선생님, 내가 메롱하는 것 알았어요?
김희정: 어제도 했잖아.
은진 : 아~ 알았구나~
은진이는 정말 의외라는 듯한 말투다. 뭐랄까? 왜 알았는데 아는 척을 안 했지? 왜 나를 혼내지 않았지? 이 사람 좀 괜찮은 사람인가? 하는 그 야릇한 표정이 아이 얼굴에서 떠올랐다.
기관의 특징은 아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단순한 재미가 아닌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을 수업의 내용으로 삼고 있으니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글자, 덧셈 등을 강요받으며 배운 적이 없다.
다만, 아이들의 흥미를 중심으로 그 안에 들어 있는 교육적인 내용들을 교사가 지원해 주기 때문에 거국적으로 말하자면 이 교실 안에는 민주적인 문화가 가득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은진이는 나를 자신과 어떤 측면에 있어서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나와 관계 맺기에 앞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것 같다.
미니 메롱 사건 이후 은진이는 나를 자신의 친구로 삼기에 괜찮은 사람으로 결론을 내린 듯 했다. 이젠 내가 가면 먼저 인사하고, 기록하려 가져간 내 노트북 내려놓을 자리를 먼저 마련해 주니 말이다.
유아보육과 교육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아이들을 이제 막 낳아 기르는 나의 또래들이나 사람들의 머릿속의 아이들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과 약간 영악한 아이의 모습, 이 두 가지 이미지들이 서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이 두 가지 모습들은 모두 한 아이 안에 내재된 모습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 메롱’사건을 이야기 하면 주변에서는 정말 요즘 아이들은 못 말리겠다는 식이다. 사실 아이들이 못 말릴 정도로 자유롭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맞는 말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런 자유와 평등을 꿈꾸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나와 평등한 관계를 맺자고 하면, 난 주춤하게 된다. 우리 세대는 전통적인 예절을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와 평등한 관계를 도출해 내야 하는 그런 책임을 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