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2주년 맞은 6.25 전쟁과 민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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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논설주간
6월 25일은 1950년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발발한지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민족이 겪은 참혹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참혹한 6.25전쟁은 북한 김일성에 의한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1994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러시아 옐친(Boris N. Yeltsin) 대통령이 제공한 6·25전쟁 관련 비밀문서에는 “김일성의 요청을 스탈린(Joseph V. Stalin)이 승인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흐루스쵸프 전(前) 소련공산당 서기장 회고록에서도 이를 확인하고 있다. 결국 구소련 비밀문서 공개에 따라 북한정권의 북침설, 내란확전설 등의 주장은 명백한 오류이다.
청소년들 6.25전쟁 인식부족 국가 미래 우려
지난 2008년 정부(행정안전부)가 6.25를 앞두고 전국 중·고등학생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절반이상이 6.25전쟁의 발발연도와 남침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어, 충격을 준바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국가발전을 담당해야 할 청소년들이 현대 한국사의 비극인 ‘6.25 남침전쟁’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 땅의 국민으로서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두말할 것 없이 현대사의 비극인 6.25전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발발된 명백한 침략전쟁이다. 이러한 사실은 전쟁 중에 노획된 북한군의‘선제타격작전계획’이란 비밀문서, 전쟁포로들의 증언과, 한국 및 미국의 자료들에서도 입증되었지만, 공산권 붕괴이후 밝혀진 구소련의 비밀자료 등에서 명백히 확인되고 있다.
-3년 1개월에 걸친 6.25 남침전쟁으로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는 등 한반도 전체가 폐허화됐고, 민간인 인명피해는 2,490,968명(한국 990,968명, 사망 244,663명, 학살 128,936명, 부상 229,625명, 납치 84,532명, 행방불명 303,212명, 북측 1,500,000명)과 피난민(320만여명), 전쟁미망인(30만여명), 전쟁고아(10만여명)을 양산시켰다. 이는 남북 모두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전쟁이었다. 이 같은 무모한 전쟁을 벌인 집단이 북한 공산당 정권이다.
또 북한 인민군은 점령기간 중 군인,경찰과 그들 가족, 우익인사, 지식인, 종교인 등 양민 13만명을 학살하였으며, 남한청소년 40여만명이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형제에게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동족상쟁이 벌어졌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대사가 아닐 수 없다.
6.25전쟁 62주년을 맞이하여 조국과 부모형제들을 지키다 장렬히 산하하신 선조들의 희생과 그 넋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은 전쟁 중에 김일성이 하달한 발언 및 지시사항 기록 자료이다.
<자료> 김일성의 대량 학살 책임을 보여주는 戰時하 김일성의 발언 및 지시 자료>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한다. 도피분자, 요언(妖言) 전파 분자와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밀정 및 파괴분자를 적발, 가차 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한 김일성의 지시하달, 출처: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반동분자, 비협력분자, 도피분자를 적발하여 '무자비'하게 숙청하라' (1950년 6.25 남침 직후 서울 시내에 뿌려진 김일성의 호소문, 출처: '꽃피는 산하-6.25의 흔적을 찾아서')-'국군장교와 판검사는 무조건 사형에 처하고, 면장, 동장, 반장 등은 인민재판에 부친다'(1950년 6월 30일 포고문, 출처: '정치범은 자수하라'와 '반동분자 처리지침')-'악질반동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은 극히 정당한 일입니다.' (1950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대회에서 진술한 김일성 동지의 보고,
출처: '한반도 분단의 재인식'-신일철 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