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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SYB소비자연합방송 &amp;gt; 뉴스그룹 &amp;gt; 오피니언</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오피니언 (2023-03-23 11:32:2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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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문형봉 칼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서</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40</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433_147.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433_147.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433_147.jpg" />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9pt;color:rgb(125,125,125);"> 헤드라인코리아저널</span></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9pt;color:rgb(125,125,125);">발행인  문    형    봉</span></p><p><br /></p><p><br /></p><p>지난 겨울은 매우 추었다.</p><p>아직도 완전하지 않은 봄이 교차하는 이 시간, 봄이 온 줄 알았는데 포근한 날씨가 뜻밖의 위로를 주는 이런 애매한(?) 계절에 아쉽지만 새로운 만남이 있어 설렌다. 강물 따라 흘러가는 계절과 시간을 느끼며 가슴을 활짝 펴고 ‘강 건너 봄이 오듯’을 불러본다.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p><p> </p><p>젊었을 때 학교에 가서 공부하노라면 왜 그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p><p>가장 지루하며 견디기 힘든 것이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만남을 약속하고 기다리고 있노라면 너무 지루하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힘들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정확하다. 시간의 흐름은 한결같다. 다만 마음의 상태에 따라 빠르게도 혹은 느리게도 느껴질 뿐이다.</p><p> </p><p>세상의 희로애락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반전된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그런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복잡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아는지 시간은 묵묵히 길을 가고 있다. 지금 그 무엇도 다 지나가게 하는 것이 시간이다. 죽을 것만 같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거나 견딜 만해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 달력을 보면 시간이 마치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p><p> </p><p>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p><p>크로노스는 시각과 시간 등 일상적으로 흐르는 시간 곧,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 생로병사의 시간 등 객관적인 시간이다.</p><p>카이로스의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오는 시간이다. 똑같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매우 빠르게 또는 느리게 찾아오고 흘러가는 시간을 말한다.</p><p><br /></p><p>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신의 아들이며 기회의 신이라 불리었다.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내가 느끼는 24시간의 속도와 다른 사람이 느끼는 24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한 시간과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이의 한 시간의 느낌은 차이가 있다.</p><p>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든,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든 그 일상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벗어나 특별한 의미의 순간,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관리할 수 없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p><p> </p><p>빨리 왔던 시간은 빨리도 떠나간다.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가는데 우리는 지나간 시간으로 디시 돌아갈 수도, 미래의 시간으로 달아날 수도 없다.</p><p>하나님께서 모두에게 똑 깉은 시간을 주셨는데 이제 우리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p><p>야박한 세상, 자신을 양보하고 힘든 상대에게 이해하며 배려한다는 그 정신이야말로 따뜻한 마음이라 여겨진다. 시간은 순간으로 지나가기에 우리의 걸어가는 발자국으로 나날의 인생의 보람으로 남기는 알찬 걸음이었으면 참 좋겠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값진 삶이 곧 내일의 희망이며 덕(德)쌓는 길이 될 것이다.</p><p> </p><p>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따라 찾아 어떻게 바르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돌아다보면 왔던 길이 너무 부끄럽다, 그 아쉬움으로 지나온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르기에 ”지금, 시간“이 없다.</p><p> </p><p><br /></p><p><br /></p><p>문 형 봉 (京南)</p><p>전) 대한기자협회 상임중앙위원</p><p>월간 KNS뉴스통신 사장</p><p>현)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발행인</p><p>식약저널 편집인</p><p>특수경찰신문 편집주간</p><p>더조은신문 편집국장</p><p><br /></p><p>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23-03-23T11:32:2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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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경우칼럼] 피조물의 탄식 귀를 기울이자</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9</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340_657.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340_657.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340_657.jpg" />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9pt;color:rgb(125,125,125);">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span>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9pt;color:rgb(125,125,125);">총재  이   경    우</span></p><p><br /></p><p>기상관계자들은 올여름도 무척 더울 것이라 예상한다. 라니뇨 현상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배경은 지구 온도 상승과 온실가스 때문이다. <br /></p><p><br /></p><p>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온도는 상승한다. 지구 온도가 상승할수록 기후 재앙이 닥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의 변동성은 인류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는 폭염과 산불, 홍수와 가뭄을 수시로 가져온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은 홍수, 폭염의 위험성을 높인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피조물의 탄식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p><p><br /></p><p>가장 예민한 기후 청각으로 피조물의 탄식을 감지하는 곳은 글로벌 기업들이다.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국제적 기업 간 협약 프로젝트인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통해 기업들은 기후 재앙에 대처하고 있다. 탈산소 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국가 경쟁력이 되는 탈산소 시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탈 산소사회의 문을 열 때 병든 지구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기업들은 이미 판단한 것이다.</p><p><br /></p><p>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력(25.8TWh, 2021년)을 사용하는 ICT 제조기업인 삼성전자는 이미 2022년 9월 ‘RE100’ 프로젝트 참여를 선언했다. 삼성전자의 핵심고객인 애플이 ‘삼성전자가 RE100 조건에 충족되지 못한다면, 애플은 RE100에 이미 가입한 대만의 TSMC로 거래처를 옮길 수도 있다’라는 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삼성은 즉시 RE100에 가입을 결정했지만, 재생에너지의 공급량은 적고 전기소비량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환 속도는 더딜 뿐이다. </p><p><br /></p><p>오히려, 삼성전자의 RE100 가입 결정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 또한 높은 재생에너지의 개발과 공급 측면으로 축이 이동하고 있다. 기후 변화를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친 위기로서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산업공정에 적용해야 하며, 이것은 곧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 것이다.</p><p><br /></p><p>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자발적으로 ‘탄소부담금’이란 제도를 만들었다. 각 부서는 스스로 에너지 비용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환경 친화성을 실천하면서, 혁신적인 글로벌 탄소 감축 기업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p><p>블랙락은 우리나라 GDP의 여섯 배에 달하는 1경 3,000조를 움직이는 세계최대 자산운용사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이 블랙락이 2022년 4월 ‘탈산소 경영을 하는 회사에 투자 결정의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라고 선언했다. 우리 기업과 산업 정책결정자들은 기후 쇄국정책을 벗어나 이러한 흐름과 상황을 잘 알고 대처해야 한다. </p><p><br /></p><p>폐플라스틱은 환경오염의 3대 주범으로, 바다에서 거대 쓰레기 섬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의 16배나 되는 거대한 폐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태평양에 있다. 이 가연성 폐기물을 땅에 매립할 경우 메탄이 발생한다. 메탄 발생량은 지구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에 비해 미미하지만,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0배에 달한다. 지구 전체 온실효과의 15~20%를 차지하는 강력한 물질이다. </p><p><br /></p><p>이런 환경오염의 주범인 폐플라스틱을 순환자원으로 여기며 제2의 에너지 혁명을 꿈꾸는 기업들이 있다. SK 지오센트릭은 2025년까지 아시아 최대 규모 폐플라스틱 열분해 공장 건설을 선언하고 석유화학의 원료인 열 분해유를 생산하는 자원순환 기술을 향후 중소기업들에 이전하는 것까지 꿈꾸고 있다.</p><p>시멘트산업은 철강업과 석유화학산업에 이어 국내 세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이다. 이 시멘트업계 역시 ‘석탄사용 제로(0)’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석탄 대신 합성수지를 연료로 사용해서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등의 환경오염물질을 줄인다는 것이다. 쌍용C&amp;E의 경우 2030년에는 석탄을 아예 사용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p><p><br /></p><p>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속도 OECD 국가 1위이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꼴찌다. 기후위기를 외면하고 회피하기보다는 부딪쳐 이겨낼 때이다. 적극적으로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의 자기 몫 이상을 하도록 국가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p><p>에너지를 재생하고 탄소를 줄이는 기업경영과 정부 정책이 지속할 수 있도록 스마트하고 혁신적인 기후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분야의 새로운 연구와 자원 재활용 정책을 획기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특히 용인지역이 반도체 클러스터화되어 있기에 여유부지에 신재생에너지 산업화와 자원 재활용을 위한 순환자원 시설 집약처로 구상할 수 있다. </p><p>피조물의 탄식에 민감한 기업과 국가가 이미 도래한 탈산소 사회를 이끌어 갈 것이다.</p><p><br /></p><p>전)국회저널 발행인</p><p>남북민간교류협의회 공동의장</p><p>울산공주공해추방협의회 상임의장 역임</p><p><br /></p><p>현)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총재</p><p>식약저널 공동회장</p><p>헤드라인코리아저널/한국기독뉴스 회장</p><p>공동체의식개혁협의회 경남지역 상임의장</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23-03-23T11:30:0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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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문형봉 칼럼]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8</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246_2416.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246_2416.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246_2416.jpg" />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9pt;color:rgb(125,125,125);">헤드라인코리아저널 발행인 문형봉</span> </p><p><br /></p><p><br /></p><p>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런데 큰 문제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질문하면, 궁색한 답을 한다. “가족들이 건강하면 행복하다.”</p><p><br /></p><p>또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으면 행복하다.”</p><p><br /></p><p>“편히 살 수 있는 주택이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라고 한다.</p><p><br /></p><p>그런데 그래서 행복한가? 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p><p><br /></p><p>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 인생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p><p><br /></p><p>요즘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가장 큰 죄는 그 직위를 이용하여 사리를 추구하는 일이다. 그들은 맡은 사명보다는 자기의 이익의 추구나 치부에만 힘쓴다면 이는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p><p><br /></p><p>끊임없는 사색당쟁(仕色黨爭)에 시달리면서 황희정승과 같은 청백리(淸白吏)의 고매한 선비정신이 살아 있었다. 본인의 행복에 앞서 나라를 걱정하는 인물로 높은 품격으로 살았던 인물이다.</p><p><br /></p><p>힘없고 순박한 국민은 법을 잘 지키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가 하면 일부 특권층이나 부유층은 교묘한 방법으로 탈법과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받기보다 오히려 이익을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법은 모든 사람 앞에 평등하다고 배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우리의 법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상식화된 생각이다.</p><p><br /></p><p>우리는 자꾸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돈을 벌어도 온갖 거짓말과 편법이 동원되고, 내 몸을 함부로 움직여 성공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거짓과 부패한 행동이 지나치다 보면 내 인생은 그야말로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p><p><br /></p><p>생활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이 있어야 목표도 생기고 의욕도 나는 것이다. 그런데 원칙이 없는 개인은 무질서한 삶을 살아 일평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고 원칙이 없는 가정은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이 될 것이다.</p><p><br /></p><p>“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남긴 파스칼(Blaise Pascal, 1623년∼1662년)은 “거룩한 생활의 평온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힘 다음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다.”라고 말했다.</p><p><br /></p><p>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수녀님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진 재산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러자 인도의 거리에 뛰어노는 불쌍한, 고아와 같은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물에서 물을 떠다 더러운 아이를 씻기고, 글을 가르치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었다.</p><p>사람은 언제 행복을 느낄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때도 행복하지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그 행복은 배가가 된다. 누군가를 돕게 될 때 나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면서, 내 안에 놀라운 행복감으로 충만하다.</p><p><br /></p><p>아무리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인생을 거룩하게 모범적으로 살 수는 없을까.</p><p><br /></p><p>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지구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제각각이듯이 모든 이들의 인생은 독특한 자기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결코 같은 길을 갈 수도 없고, 갈 필요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p><p><br /></p><p>이제 학력과 돈과 권력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자기 성찰을 통해 과거 잘못 살아 온 삶을 반성하고 자신을 다시금 새로운 거룩한 길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p><p> </p><p>[문 형 봉]</p><p>(현)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발행인, 식약저널 편집인, 특수경찰신문 편집주간,</p><p>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 한국최고인물대상조직위원회 추진위원장</p><p>(전) [사]대한기자협회 상임중앙위원,</p><p>월간 KNS뉴스통신 사장</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22-10-30T21:08:5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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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최지만 경제칼럼] 재테크의 기본, 절약과 저축으로 위기 극복</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7</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167_9451.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167_9451.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167_9451.jpg" />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9pt;color:rgb(125,125,125);">최지만 칼럼니스트</span></p><p> </p><p>전 세계적인 양적완화 정책과 저금리로 인한 막대한 유동성 자금이 풀리면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하여 정부와 가계 경제의 어려움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힘들고 막막한 때일수록 재테크의 기본인 절약과 저축에 집중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인내로 극복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p><p><br /></p><p>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소비하는 짠테크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지속하는 물가 상승에 절약형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는 것 같다. 짠테크란 인색하다는 뜻의 ‘짜다’와 투자를 일컫는 ‘재테크’의 합성어다. 소비를 줄여나가며 자산을 늘리는 뜻이다. 짠테크의 핵심은 절약과 저축이다. 이에 원론적인 접근이지만 생활 속 근검절약과 현명한 저축 방법을 위해 몇 가지 중요한 기본원칙을 제시해보고자 한다.</p><p><br /></p><p>먼저 물건을 살 때 세 번 이상 생각하다 보면 불필요한 과소비를 줄일 수 있다. 가끔 주위를 둘러보면 스마트폰이 고장이거나 기능적인 문제가 전혀 없는데도 최신 것이 좋다며 출시할 때마다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물가와 금리가 높아 생활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으로 나에게 꼭 필요한 제품인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p><p><br /></p><p>다음은 고가의 제품일수록 기능에 이상이 발생할 때까지 오랫동안 사용해야 한다. 보통 자동차를 비롯해 전자제품이나 가구들은 가격대도 비싸고 충분히 장기간 사용이 가능하다. 유행에 따라 또는 최신 성능이 좋아 보여 멀쩡한 자동차를 새 차로 교체하거나 흠 없는 가구도 식상하다며 색깔만 다른 것으로 바꾸면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큰돈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대수롭지 않겠지만 어려운 상황이라면 고장 전까지 사용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목돈이 들어가는 제품 구입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p><p><br /></p><p>더불어 다양한 곳에서 가격을 비교하며 좀 더 가성비 좋은 제품을 사야 한다. 저렴한 온라인의 경우에도 사이트마다 가격 차이가 크다 보니 시간을 갖고 여러 곳을 검색하다 보면 식품이나 의류비 지출을 줄이며 생활비를 아낄 수 있다. </p><p><br /></p><p>이렇게 조금씩 아낀 절약 비용과 근로소득을 합해 수입의 50% 이상은 저축을 해야 한다. 부부가 월급을 따로 관리하는 것보다는 경제적인 마인드가 조금 우위인 쪽에서 합쳐서 관리하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월 최소 변동 없이 넣을 수 있는 일정 액수의 금액은 이자가 조금 높은 고정 적금을 활용하고 성과금이나 보너스 같은 비고정적 급여는 자유적립식 예금에 넣으면 된다. 1년 동안 모은 적금은 이자까지 합산하여 다시 예금으로 돌리자. 이자까지 다시 예금으로 재예치해야 복리 효과를 누린다.</p><p><br /></p><p>예금이나 적금은 거래 은행에서 가입하면 실적에 따라 최고 0.5~1% 정도의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예금으로 은행에 예치할 때는 돈을 쪼개서 넣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긴급한 일이 발생할 때 예금 해지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한다. 제1금융권보다는 저축은행, 신협,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와 같은 제2금융권을 이용하면 좀 더 높은 금리를 받는다.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는 오천만 원 미만으로 설정하면 된다. </p><p><br /></p><p>또한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예적금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자녀 우대통장이나 스마트폰 가입상품, 목표달성 가산금리 적용, 실버 및 직장인 우대 등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을 찾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p><p><br /></p><p>시세보다 저렴한 공공주택을 분양받기 위한 청약통장 가입 또한 필수이다. 청약통장은 매달 2만 원부터 50만 원까지 자유롭게 넣을 수 있다. 민영주택은 돈을 정기적으로 납부하지 않더라도 계좌 가입 후 2년이 경과하고 지역 및 면적별 금액을 일시에 예치하면 청약 자격이 부여된다. 하지만 LH(한국토지주택공사),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같은 택지개발 공공아파트 분양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월 10만 원씩 넣어야 한다. 공공주택의 경우 40㎡ 이하 국민주택은 납부 횟수가 많은 순으로 당첨자를 뽑지만 40㎡ 초과는 납부된 누적 인정 총금액이 높은 사람이 우선이다. 납입하고 있는 인정 금액은 매월 10만 원이 상한선이다. </p><p><br /></p><p>요즘 1년 정기예금 이자가 5%에 근접하다 보니 웬만한 투자수익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고수익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근로자 일자리 소득 결과를 살펴보면 중소기업 직장인의 월평균 소득은 259만 원이다. 열심히 절약, 저축하여 오천만 원을 예금통장에 일 년간 넣어두면 세전 250만 원 가까운 이자를 받게 된다. 일하지 않고도 한 달 월급을 더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로 인한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자포자기하며 괴로워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인내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견뎌보자.</p><p><br /></p><p>송경락 기자 skr70800@naver.com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22-10-22T23:52:0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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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바라</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6</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038_6355.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038_6355.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9038_6355.jpg" />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9pt;color:rgb(125,125,125);">         전태영 / 싯딤나무교회 담임목사</span> </p><p><br /></p><p><br /></p><p>태초에</p><p>하나님이</p><p>천지를</p><p>창조하시니라(창1:1)</p><p><br /></p><p>In the beginning </p><p>God</p><p>created</p><p>the heavens</p><p>and</p><p>the earth.</p><p><br /></p><p>성경 66권 1189장, 30,993절의 시작인 첫 절이다. 세상을 살아가느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잊을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p><p>성경의 가장 중요한 요절이다.</p><p><br /></p><p>사람이 세상가운데 살다보면 어느새 자기자신의 존재가치를 잊어버리고 거대한 세상의 한 조그마한, 보이지도 않을 초라한 부분으로만 여겨지게된다.</p><p><br /></p><p>자연속에 들어가도 같다. 거대한 대자연의 규모에 눌리거나, 아니면 그 자연스러움에 빠져 어느순간 나의 존재가 그저 자연의 경외함속에서 </p><p>자그마한 부분으로만 느껴지게된다.</p><p><br /></p><p>그리고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때 오히려 평안함마저 갖게 된다. </p><p><br /></p><p>인간이란 존재가 거대한 세상속에 별볼일 없었던 존재같이 느껴짐으로 자신의 세상과의 타협에 대한 합리화를 만들어냄으로 갖게되는 위안이다.</p><p><br /></p><p>그런데 성경을 펴는 순간 하늘의 음성이 들려온다.</p><p><br /></p><p>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p><p>너는 그렇게 창조되어진 존재가 아니다!</p><p>너는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면서 적당하게 살아가야할 존재가 아니다!</p><p>너는 우주만물을 창조한 나 여호와의 특별한 존재이다!</p><p><br /></p><p>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됐는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존재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인지를 선포하고 있다.</p><p><br /></p><p>성경은</p><p>우선 나라는 인간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선포하고 있다.</p><p><br /></p><p>"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니라"(창1:1)</p><p><br /></p><p>창조는 히브리어로 '바라'이다. 창조하다라는 '바라'의 의미는 무에서 새롭게 만들어 낸 존재라는 것이다. 즉 특별한 창조의 계획에 의해서 </p><p>창조주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p><p><br /></p><p>세상의 한 부분으로 세상의 소품으로 평가될 존재가 아니라 고유의 목적성에 의해서 창조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p><p><br /></p><p>성경은</p><p>그다음으로 인간의 특별함에 대하여 선포한다.</p><p><br /></p><p>인간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p><p><br /></p><p>"하나님이 가라시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p><p><br /></p><p>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피조물은 인간밖에 없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보며 뿌듯하게 생각하고 자녀를 향한 특별한 사랑을 갖게되는 </p><p>이유중의 큰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자녀속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p><p><br /></p><p>뿐만아니라 성경은 인간의 특별한 역할에 대해서 선포한다.</p><p><br /></p><p>자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창조주는 자신의 모든 창조물을 관리하고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p><p><br /></p><p>"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p><p>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p><p><br /></p><p>창조주의 인간의 창조에 대한 계획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마지막에 두셨고, 그 모든 계획에 대해서 최고로 흡족하게 여기셨다. </p><p><br /></p><p>"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31)</p><p><br /></p><p>인간 창조를 여섯째날에 하시고 심히 기뻐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이다.</p><p><br /></p><p>인간이 세상속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세상을 통치하게 하는 것이 창조주의 질서이다.</p><p><br /></p><p>즉 인간이 세상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가 아니고, 자연속에 빠져서 인간의 존재가치를 잊어버리는 </p><p>것이 창조의 질서가 아니고, 오히려 세상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게되어야만 하는 것이 창조의 질서이어야 된다.</p><p><br /></p><p>"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p><p>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9~31)</p><p><br /></p><p>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 한명 한명에 대한 사랑과 계획을 갖고 계신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신다고 말씀하신다. </p><p><br /></p><p>그 신실하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사는 존재가 바로 당신임을 잊지말라고 성경 첫 페이지, 첫 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p><p><br /></p><p>"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1:1)</p><p><br /></p><p>할렐루야 ~</p><p><br /></p><p>오늘 내가 나 혼자밖에 없는 것 같이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영의 눈이 닫혀서 하나님의 음성을 </p><p>듣지 못하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p><p><br /></p><p>오늘 하루가 이번 한주가 주님의 영과 함께 동행하는 날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22-07-11T06:48:4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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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의 교육현장과 교사 그리고 여성</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5</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20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한국의 교육현장과 교사 그리고 여성</span></b></p><p>​</p><p>왜 이렇게 영유아 보육과 교육 현장에는 여자들이 많이 있는 것일까? 현재 내가 속한 협회는 교사교육이 한창이다. 레지오 접근법 (Reggio Approach)을 한국에 도입해서 실천하려는 기관들의 교사들이 주를 이루는 이 교사 연수는 거의 98%가 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p><p>​</p><p>사실은 한국의 교육현장 특히 영유아교육현장의 여성의 비율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자리라고 해도 무색함이 없을 것이다.</p><p>​</p><p>동영상 강의 ‘여자와 대화하는 법’에서 드러난 여성성이 갖는 의미  이것은 사실 여자라기보다는 여성성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돌봄’과 ‘공감’의 능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여자들의 특징을 YOUTUBE상에서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여자와 대화하는 법’ 이라는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해 보자. </p><p>​</p><div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882_7387.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882_7387.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882_7387.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_tB42wkoiZw&amp;feature=endscreen" rel="nofollow">https://www.youtube.com/watch?v=_tB42wkoiZw&amp;feature=endscreen</a></div><p>​ </p><p>이 동영상은 여자들과 대화하기위해서는 다섯 개의 단어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br /></p><p><i><b>​진짜? </b></i></p><p><i><b>정말? </b></i></p><p><i><b>​웬일이야? </b></i></p><p><i><b>헐!</b></i></p><p><i><b>​대박!</b></i></p><p> ​</p><p>그리고 두 번째로 ‘신 도 림 역 에서 영 숙 이 를 만났다’라는 사건에 대해서 들은 남자의 경우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 몰라서 힘들어 하는 반면, 이 사건을 여자 친구에게 메시지로 보낼 경우 전달하지 않은 친구에게서 ‘너 오늘 ‘신 도 림 역 에서 영 숙 이 를  만났다며?’라고 답장이 온다고 말하고 있다. </p><p>​</p><p>​이 동영상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여자들의 대화방식을 또 다른 관점에서 조명했을 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p><p>​</p><p><b>여자들의 대화방식은 보다 탄력적이다.</b></p><p><b>여성들의 대화방식은 보다 수용적이다. </b></p><p><b>​여성들의 대화 방식은 공감이 주를 이루고 있다. </b></p><p>​</p><p>여자들의 대화 안에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숨어 있다. 하나의 이야기는 어느 새 다른 이야기로 전환되는데 그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나 이유가 없다. 전환의 이유는 공감하기 위해서 혹은 수용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렇게 다른 이야기를 하다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가기도 하고 두 가지를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세 번째 화두로 전환되는 것은 여자들에게 있어서 식은 죽 먹기와 같다. </p><p>    </p><p>이렇게 여자들의 대화는 공감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구조에 의해서 탄력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이 이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 물러서 여성이 이야기 하는 굵직굵직한 대화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보통 이를 파악하는 능력을 초인지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어린이들의 가상놀이 영역에서 초인지가 발달한 어린이가 놀이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p><p>​</p><p>​여성들의 이러한 특징을 이해했다면, 이제 아이들의 놀이와 사고방식을 떠올려 보자. 어린이들은 옹아리를 거쳐서 발음이 명확하지 않는 말로 대화를 시도하고 연습하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대화하는 방식을 알아간다. </p><p>​</p><p>​또한, 아이들은 가지고 놀던 유연한 와이어 철사를 고래로 만들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송이로 둔갑시키는 대화법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은 보다 은유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고 말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이는 단순히 놀이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사용해 보고 그것을 친구와 만나 나누어 봄으로써 나의 지식이 또래 사이에서 얼마만큼 공신력을 가질 수 있는지 실험을 지속하는 것이다.</p><p>​</p><p>​그렇다면,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는 성인이라면 이런 은유의 맥락을 탄력적이고 수용적이며 공감하며 주고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자들이 지닌 대화의 특성은 보다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p><p>   </p><p>물론, 어린이들의 이런 은유의 대화법이나 놀이방식, 세상을 알아가는 책략을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성인으로서 많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책을 통해 학습한 지식뿐 아니라 현장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로 쌓아가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p><p>​</p><p>​그리고 현재 그 노력의 첫걸음을 뗀 교사들이 3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협회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엉덩이를 길게 붙이고 경청하고 있다. 이 좋은 봄날에 말이다. 교사들의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선생님들… 응원합니다.</p><p><br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939_2726.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939_2726.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939_2726.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9T07:21:2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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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어린이들에게 토론이란…?</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4</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9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어린이들에게 토론이란…?</span></b></p><p><b>​</b></p><p><b>대화가 가진 가능성 </b></p><p>​</p><p>우린 매일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부모님과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숨겨진 나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기도 하고, 친구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직장 동료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해야할 때도 있다.</p><p> <br /></p><p>예상컨데 모두가 대화의 과정이 순탄하길 바라지만, 대화의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나와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피할 수 없는 듯하다. 그리고 수반되는 관계적 갈등과 문제.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전환한다면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더 많은 일들을 특히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경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존재는 필수적이라는 것을 나는 어린이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다.</p><p>​</p><p>지난 칼럼 ‘과학과 상상의 경계’에서 나타난 OHP반사판에 올려진 손의 위치와 벽에 비춰진 손 그림자의 위치가 반대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약 3개월 동안 아이들은 왜 그림자의 방향이 실제 손을 올려 놓은 위치와 반대로 보이는지에 대해서 6가지의 가설을 내놓았다. </p><p>​</p><p>3개월 동안 아이들은 빛과 그림자라는 매력에 심취하여 과학적 현상에 대해 탐색해 보고 연구해 보는 몰입의 경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여섯 살 어린이들이 갖는 몰입을 통해 드러난 6가지 가설은 듣고 있으면 나름의 논지와 상대의 마음을 흔들만큼 과학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p><p>​</p><p>​하지만, 처음부터 어린이들 사이에서 이런 놀라운 가설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은 아니다. 생각의 흐름의 물꼬를 튼 어린이 한 명이 있었으니 그 어린이는 다름 아닌 바람 이야기를 꺼낸 영훈이다. 영훈이의 ‘바람 때문에 그림자가 뒤집어졌다’라는 아이디어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게 말이 돼?’할 정도로 파격적이었고 나는 ‘풋’ 하고 웃음을 참아야 할 정도로 재미있는 혹은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p><p><br /></p><p>​바로 생각 파괴자 영훈이의 의견 덕분에 이 안건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단숨에 아이들 사이의 핫 이슈가 되어버렸다. <br /></p><p> </p><p><br /></p><p><b>토론의 출발점 :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 </b></p><p>​</p><p>사실 영훈이가 처음 이 이야기를 꺼낼 때 교실의 구성원들의 반응은 요즘 날씨처럼 차디차기만 했다. 너무 파격적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고 또 다른 하나는 평소 영훈이라는 아이의 캐릭터가 약간 유별났기 때문이다. 교사의 말에 베시시 웃으며 ‘몰라요~~ 싫어요~~~’ 라고 끊임없이 말했기 때문에 구성원들 사이에서 영훈이는 느리고 답답하고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약간은 엉뚱한 친구였다. </p><p>​</p><p>​물론 나에게 영훈이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이었다. 대세를 거스르며 ‘No’를 말할 수 있는 영훈이의 대담함과 여유로움은 항상 나를 감동 시키며 큰 교훈을 주었고 난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영훈의 캐리터가 부럽기까지 하였다. 물론 영훈이가 나의 반이었다면, 참으로 쉽지 않은 어린이었음에 틀림 없지만 말이다.  그런 영훈이가 내 놓은 ‘종이처럼 그림자도 바람에 뒤집어 진 것이다.’라는 의견은 평소 영훈이와 성격처럼 조금 엉뚱했고 파격적이었다. </p><p>​</p><p>​그래서 이 이야기가 꺼내기가 무섭게 옆에 앉아 있던 모범생 진아는 팔꿈치로 영훈이의 허리춤을 푹하고 찔렀다. 동시에 진아의 시선은 영훈이의 반대 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고개는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말도 안돼 어이없어’라는 표정 ‘그건 아니지’라는 말을 온 몸으로 하고 있었다. 바로 이어서 진아는 손을 들어 위에 동그란 것(볼록렌즈) 때문에 그림자가 뒤집어진 것이라는 의견을 재차 내놓았다. </p><p>​</p><p>​난 순간 멈칫하며 망설였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진아가 ‘정답’을 밝혔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진아의 영훈이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비록 정답이 아니지만, 뭔가 자신만의 논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 역시 가치있는 의견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마치 성인처럼 영훈이의 생각을 정답의 잣대로 판단하며 ‘응징’의 팔찌르기를 한다? </p><p>​</p><p>난 약간의 교사로서의 본능을 발휘해 두 가지 의견을 동등한 가설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난 이 결정을 바로 실천하기 위해 난 팔장을 끼며 진지함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 벌써 두 가지 생각이 나왔다. 동그란 것 때문에 그렇다. 저기 위에 달린 저 동그란거 말하는 거야 진아야? (고개를 끄덕이는 진아) 그리고 영훈이는 바람 때문에 그렇다……? 흠…. 선생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근데 바람은 좀 신기하네? 흠… 하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그림자도 종이처럼 그렇게 무거울 거 같진 않으니까?" </p><p>​</p><p>​그러자 영훈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 맞아요~ 그리고 바람이 진짜 세게 불고 비도 오고 그러면 집도 날아가고 나무도 쓰러지고 그래요~" 라며 자신의 생각을 강조하였다. 그러자 교실은 순간 조용해졌다. 듣고보니 영훈이의 의견이 아주 틀린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p><p>​</p><p>​폭풍처럼 센 바람 정도라면 확실히는 몰라도 그림자쯤은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p><p><br /></p><p><b>​</b></p><p><b>우리가 만들어 간 토론문화 : 대화, 경청과 소통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가는 열쇠</b></p><p>​</p><p>​이 날의 이야기 나누기 시간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실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듯 하다. 이후 아이들은 엉뚱해 보이는 아이디어 조차 하나의 가설로서 받아들이며 감정이 아닌 논지로서 반박하고 혹은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p><p>​</p><p>​우린 토론을 지속해 가면서<b><i> A의견이 맞다 혹은 더 옳다 혹은 B의 의견이 더 가치있다</i></b>라는 식의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한 생각을 검토하고 재배열해 보고 또 다른 생각이 들어왔을 때 다시 생각들을 검토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p><p>​</p><p>​덕분에 <b><i>우린 A와 B 혹은 C중 선택할 필요없이 두 가지 이상의 아이디어들이 섞인 H</i></b>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려고 하는 태도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교실의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p><p>​</p><p>​하지만, 이런 사회 맥락적인 것들은 말로 해서는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듯 하다. 아이들에게 상대의 생각을 존중해 라고 말하기보다 각자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문화를 교실에 널리 널리 퍼뜨려 보자. </p><p>​</p><p>​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하게 되는 관계의 연결고리들이 형성되는 듯 하다. 나와 너를 존중하는 너와 나의 관계말이다. 존중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 질수록 결국 우리 각자는 더 많은 존중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이기적인 발상일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해 상대를 존중하는 실천을 바로 시작해 보길 바란다. </p><p>​</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783_5341.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783_5341.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783_5341.jpg"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9T07:04:2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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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과학과 상상의 경계는 매우 친근하고 밀접한 관계</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3</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8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 과학과 상상의 경계는 매우 친근하고 밀접한 관계</span></b></p><p>     </p><p>과학과 상상의 경계? 과학과 상상은 서로 상반된 단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둘은 매우 친근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과학을 업으로 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만 할 것 같지만 세상에서 가장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는 직업군에 속한다.</p><p>    </p><p>뉴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의 존재를 감지해낸 에피소드를 떠올려 보자. 나무에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뉴튼의 통찰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위나 옆이 아닌 일정하게 땅이라는 곳을 향하게 하는 것에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고 가설을 세운 것이다. </p><p>​</p><p>​가설이란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라고 하는 과학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는 용어이다. 이제 과학자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가설을 실험과 관찰 등을 통해 검증하는 일이다.</p><p>​</p><p>​</p><p><b>​ ▷ 교실 : 과학과 상상의 우호적인 만남</b></p><p>    </p><p><i><b>“선생님, 종이가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그림자도 바람 때문애 아렇게 바뀐 거예요?”</b></i></p><p><i><b>“ 바람이 많이 내려오고 또 많이 올라가고 그러면서 비도 오고 그러죠? 그럼 집도 날라가고요. 그럼 그림자도 날아가고……”</b></i></p><p>​</p><p>​그림자가 종이처럼 바람으로 인해 뒤집힐 수 있다는 이론. 내가 기록과 연구를 위해 나가는 방배동의  A유치원의 여섯 살 된 영훈이가(가명) 한 말이다. 영훈이는 고기압과 저기압에 대한 개념과 태풍의 형성 과정까지 거론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 한다. </p><p>​</p><p>​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OHP는 한때 PPT 발표를 위해 고안된 사무용품이었지만, 교실에 들어 와선 아이들이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놀이와 탐색에 유용한 매체로 사용되고 있다. </p><p>​</p><p>​이 날 4명의 아이들이 반사판 위에 손을 올려놓고 벽에 비춰진 그림자 모양을 보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손바닥의 위치와 벽에 비친 그림자의 위치가 일치하지 않고, 심지어 반대쪽에 생긴다는 걸 발견한다. 손을 오른쪽에 올려두면 그림자는 왼쪽에 생기고 왼쪽에 올려둔 손은 오른쪽 그림자로 비추는 이 현상과 놀라운 발견에 대해 아이들은 흥분해 있었다. </p><p>​</p><p>​놀이가 끝난 후, 다른 놀이를 하던 아이들에게도 이 사건에 대해 소개하였다. </p><p>​</p><p><br /></p><p><b>​▷ 과학적 태도  </b></p><p>​</p><p>“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림자의 좌우가 바뀌는 현상에 대해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과학 수업을 하러 오는 선생님에게 볼록 렌즈라는 변인에 대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했다. </p><p>​</p><p>​이후 약 3개월 동안 그림자의 좌우가 바뀌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지식과 상상을 기반으로 한 약 6가지의 가설들이 등장하였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우린 OHP라는 기계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대해서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졌고, 결국 우리가 직접 OHP를 만들어 보자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아이들이 이 작업에 필요한 재료로 동그란 것(볼록렌즈를 지칭하는 어린이들의 단어), 프레쉬(손전등), 거울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p><p>​</p><p>​ 약 3개월의 걸친 이 그림자 이야기는 따로 수업 시간이 없이 점심시간이나 이동을 위해서 줄을 서고 있는 시간 등을 이용해 비형식적으로 일어났다. 다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궁금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집에서도 생각해 오고 다른 놀이를 하면서도 가설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p><p>​</p><p>​난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과학자가 연구를 하는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건축가에겐 온 세상이 공간으로 보이고 수학자에겐 수열로 보인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이 3개월은 그림자 이야기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p><p>​</p><p>​이런 에피소드들이 쌓일수록 난 스스로 반성해 본다. 아이들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창의력, 인지발달 등을 이유로, 초등학교 입학과 장차 이 아이가 무엇을 할 것 인지에 대한 걱정으로 한 해동안 내 생각의 잣대로 세워둔 틀 안에 아이들의 생각을 가두는 건 아닌지 말이다. </p><p>​</p><p>​ 나를 항상 깨어있게 하는 이태리의 교육 철학자 로리스 말라구찌가 쓴 ‘백가지가 있어요’라는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p><p>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602_4552.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602_4552.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602_4552.jpg" /><br style="clear:both;" /><span style="font-size:9pt;color:rgb(58,50,195);">▲ 로리스 말라구찌의 ‘백가지 언어가 있어요’(<a href="http://cafe.naver.com/hellokcct/93)" rel="nofollow">http://cafe.naver.com/hellokcct/93)&gt;</a></span> </p><p>​</p><p>​ 오늘도 교실에서 블록으로, 점토로, 연필과 지우개로… 자신에게 가치있는 놀이를 꼬물꼬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열심히 잘 놀고 있구나. 휴~ 다행이다.’라고 한시름 놓는다. </p><p>​​</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628_1047.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628_1047.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628_1047.jpg" /><br style="clear:both;" /> </p><p>​</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9T07:01:4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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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에서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는 이유…?</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2</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7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는 이유…? </span></b></p><p> </p><p><b><i>서울의 S여대의 수업시간이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묻는다.</i></b></p><p><b><i>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는 이유가 뭘까?” </i></b></p><p><b><i>​“Garage (차고)가 없어서요.”  </i></b></p><p>​</p><p>교수님은 재미있으면서도 약간 황당하다는 듯 미소를 띠우며 웃고 다른 학생들 역시 황당하다는 반응과 재미있다는 반응이 반반 섞여 있는 듯 보인다. 동문서답 같은 나의 대답은 반은 장난이었지만 다른 한편은 진심이기도 했다. </p><p>​</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445_6615.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445_6615.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445_6615.jpg" /><br style="clear:both;" /> </p><p>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의 낡은 차고에서 ‘애플’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였고, 1976년 4월 1일, 스티브 워즈니악(당시 25세)과 스티브 잡스(당시 21세), 론 웨인은 컴퓨터 조립 키트인 `애플 I`을 만들었다. (위키피디아) 잡스에게 있어 차고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실행에 옮겨볼 수 있는 무엇인가에 얽메여 있지 않은 ‘열린 공간’이자 ‘새로운 시도와 실험’의 장소였을 것이다.</p><p>​</p><p>그리고 삼성은 이런 애플의 창의적인 공간을 벤치 마킹해 ’크리에이티브 랩(C-lab)’을 서초 사옥에 설치하기로 했다. 160㎡(약 50평) 크기에 드릴, 톱 등 공구가 쌓여 있고 컨테이너박스와 시멘트 벽, 파이프기둥이 그대로 노출돼 마치 젊은 발명가의 연구실의 모습이라고 한다. 애플뿐 아니라 HP, 구글 등 세계적 IT기업들이 차고에서 창업했다고 (매일경제) 하니 삼성의 이런 시도는 조직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 아닐까 싶다. </p><p> </p><p>‘차고’라는 열린 공간을 이용해 창의적인 작업을 한 사람들이 IT분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p><p>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465_2675.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465_2675.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465_2675.jpg" /> </p><p> </p><p>1996년 한국에 ‘HANSON’ 이라는 밴드가 소개되었다. 형제 3명으로 이루어진 이 밴드의 대표곡이자 히트곡인 ‘MMMBOP’ (<a href="http://www.youtube.com/watch?v=NHozn0YXAeE)%EC%9D%80" rel="nofollow">http://www.youtube.com/watch?v=NHozn0YXAeE)은</a> 본토 발음으로 정확히 ‘음밥’이다. </p><p>이 발음이 재미있어서 인지 라디오의 디제이들은 “다음 곡은 ‘한손’의 ‘음밥’ 입니다.”라고 밴드의 이름을 ‘핸슨’에서 한손으로 바꿔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밴드가 주목 받았던 이유는 바로 이들의 어린 나이였다. 이 어린 형제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와 노래까지 하니 세상 사람들은 이들의 놀라운 실력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p><p><br /></p><p> 그들이 이런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빈 공간’으로서의 ‘차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는 자신들의 집 차고에서 매일 연습하고 곡을 쓰고 또 다시 연습을 하며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펼쳐 나갔고, 이는 가정의 창고를 넘어 음반사를 통해 한국 팬들에게까지 그들의 작업의 결과물이 소개되었다.</p><p> </p><p><b>‘실험’과 ‘시도’의 열린 공간 ​</b></p><p><br /></p><p>우리가 ‘스티브 잡스’나 ‘핸슨 형제’ 같은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인재들을 꿈꾼다 해서 아이들에게 없는 ‘차고’를 만들어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땅과 건축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것을 활용해야 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은 같지 않다. </p><p>​</p><p>다만, 우리는 현재 자라고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공간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미국인들에게 차고가 있다는 것의 의미는 ‘의도’와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은 ‘빈 공간’의 의미일 것이다. </p><p>​</p><p>​그렇기 때문에 이 ‘빈 공간’은 사용하는 사람(어린이, 청소년)이 임의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결국 비어 있다는 것은 그냥 빈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내재된 공간’의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도 차고는 아니지만 ‘비어 있는’ ‘목적이 불분명한’ 공간들이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p><p><br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504_1508.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504_1508.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504_1508.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8T23:13:4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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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어린이들의 다툼과 포스트모더니즘</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1</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6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어린이들의 다툼과 포스트모더니즘</span></b></p><p>​</p><p>포스트 모더니즘?  우리가 사는 사회를 이제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의 시대라고 부른다. 사실, 영×유아 교육 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p><p> </p><p>하지만, 시대의 많은 이들이 이 사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나아가게 될 것이라면, 교육자로서 그리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목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p><p>​</p><p>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있어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이 메시지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다를 수 있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틀릴 수 있지’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나 의견 자체에 대해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한다. 즉, ‘다양성’과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세상에는 불변의 한 가지 진리가 있다’라기 보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모두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윤리적인 측면까지 강조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p><p>​</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340_7936.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340_7936.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340_7936.jpg" /> </p><p> </p><p>이해를 돕기 위해 동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목은 위에 나온 것처럼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이다. 이 동화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기돼지 삼형제’를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p><p>​</p><p>​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같은 사건을 아기돼지 삼형제의 관점이 아닌 늑대의 입장과 목소리를 통해 사건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늑대에 의하면 그 사건이 있었던 날 늑대는 아주 심한 감기를 앓으면서도 할머니 생일 케잌을 만들고 있었다. 때마침 설탕이 떨어진 늑대가 돼지 형제들네 집으로 설탕을 구하러 갔지만, 불친절하고 퉁명스런 돼지들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p><p>​</p><p>​이때 감기에 걸린 늑대가 재채기를 하자 집이 날아갔고 이 사고로 돼지들은 죽게 된다. 늑대는 그저 누워있는 햄버거를 먹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돼지들이 집에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설탕을 빌려주기 싫어 문을 열지 않았다는 돼지들의 윤리적인 측면에 대해 지적하며 자신의 입장을 하소연?한다. </p><p>​</p><p>​그는 다만 우연히 나온 재채기로 인해 사고가 난 것은 유감이지만 돼지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돼지들을 먹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p><p><br /></p><p>​</p><p><b>​돼지가 나쁘니 이제는 늑대편 들기? </b></p><p>​</p><p>​이 동화는 제목만 봐도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지만, 지금까지 돼지들이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p><p>​</p><p>​늑대에 입장에 있어 사람들이 돼지들 이야기만 귀 기울였기에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 억울함을 우리는 이제 알게 되었다. 자 이제 새로운 국면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우린 늑대 편을 들어야 할 차례이다. 그게 왠지 공평해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게 공평한 일일까? 그것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일까? 사실, 돼지들은 돼지가 겪은 일에 대해서 자신들의 관점을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으며, 늑대는 자신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사정을 말하며 자신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 한 명만이 옳고 다른 한 편은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가 다를 뿐 옳고 틀린 쪽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실제가 아닐까 한다.</p><p><br /></p><p>​</p><p><b>​상대적인 관점에서의 갈등 조율해보기 </b></p><p>​</p><p>​그렇다면, 아이들이 살고 있는 교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과 사건들은 서로 다른 관점과 사정들의 결합에 의해 발생한다. </p><p> </p><p>​ 위 내용들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교사에게 갈등해결을 요하며 찾아오는 사안들이다. 아이들은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내심 ‘어떻게 얘가 나에게 그럴 수가 있지?’ / ‘얘는 왜 이러는 거지?’ / ‘내가 옳고 너가 틀렸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p><p>​</p><p>​위와 같은 갈등 상황에서 교사들은 잘잘못을 따져 법원에서처럼 판결을 내려주는 방식으로, 일이 더 커지는 것을 막으며 일사천리로 해결한다. 교사들이 이렇게 발 빠르게 해결해 버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루에도 이런 일들이 수 십 번도 일어난다는 점과 물리적 안전상의 이유 그리고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다칠까 봐 또한, 이런 조율방식이 가장 편해서 일 것이다. </p><p>​</p><p>​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교사가 이런 방식을 취하는 강력한 이유는 아이들이 교사에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나의 억울함을 알아 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내 편이 되어 달라고 아이들은 교사에게 자신의 입장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하며 다가온다. 그러면 교사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나는 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래서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것이지? 라고 말이다. 이것은 아이들에게서 오는 강력한 메시지이며, 교실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 형제자매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p><p><br /></p><p>​</p><p><b>​그렇다면, 내가 법원의 판사가 아니라 교실의 교사로서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일까? </b></p><p>​</p><p>​교사는 이러한 갈등 상황에 있어 아이들이 서로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해 볼 수 있도록 한국말을 통역해 주는 ‘상황 통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또 상대편 아이의 입장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상황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에 교사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다. 너희가 갖고 있는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도 해결될 수 있고, 또 저런 방식도 가능하다고 말이다. </p><p>​</p><p>​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옵션을 줌으로서 아이들은 현재 하나의 방식이 고정 불변하지 않으며 다양하게 나아갈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판결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두 아이가 서로의 생각을 다시금 나누어 볼 수 있는 시간과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어떨까? 이런 기회를 통해 아이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교사가 판결을 내려줌으로서 사건이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되지는 않을 수 있고, 이로 인해 교실 내의 잡음이 많아질 수 있지만 아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p><p>​</p><p>​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토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곳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성인’의 우리들은 성장 과정에서 이런 경험을 많이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의견을 이야기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구나 라고 받아들이기보다 내 생각에 반기를 든다는 감정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 있는 듯하다. 이렇게 성인인 나 자신의 모습만 보아도 아이들이 하는 교실에서의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p><p>​</p><p>​나이는 어리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교실은 작은 사회이며, 이는 보다 넓은 사회와 비교했을 때 규모(스케일)은 다르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질적으로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교사들이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기의 이 아이들이 언젠 가는 이 시대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이며, 현장의 교사들은 자신들이 이 사회를 살아갈 시민들을 키우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p><p><br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362_6004.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362_6004.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362_6004.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8T22:35:4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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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머글세계에서 온 해리</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30</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5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영화로 읽어보는 어린이들의 놀이문화 머글세계에서 온 해리… </span></b></p><p>​</p><p>​‘해리포터’가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매우 흥분하였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법한 소재일지 몰라도 그 내용은 모두가 감탄할 정도의 짜임새와 구성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p><p>     </p><p>부모 없이 이모네 집에 얹혀살던 해리가 어느 날 마법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 마법사들의 세계는 어린이들의 마음뿐 아니라 성인들의 상상력을 부추기기 시작하였다.</p><p>​</p><p>영화 속 해리의 모습을 보면, 주인공 해리에게도 마법세계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해리에게 마법세계가 낯선 이유는 해리는 머글세계 즉 인간세계에서 온 이방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해리가 빗자루를 처음 타고 날 때, 부엉이를 선물 받을 때 그리고 지팡이를 새로 샀을 때 우린 마치 영화 속 해리가 된 듯 이 신기한 마법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p><p>​</p><p><b><i>머글 : 영화 ‘해리포터’에서 마법을 부릴 수 없는 일반 ‘인간’을 지칭하는 용어 </i></b></p><p><b><i>머글세계 : 인간들이 사는 세계마법세계의 어린이들 </i></b></p><p>​</p><p>​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때론 너무나 학구적이고 철학적이어서 과학자나 철학자들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리고 또 다른 날의 놀이를 보면, 2~3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친구의 손짓 하나에도 재미있다며 끊임없이 웃기만 하는 날도 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교사가 하자고 제안한 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신들의 일에 열중할 때도 있다.</p><p>​</p><p>​이런 아이들을 보면, 신체적으로 성장이 끝난 어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가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마법?)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교사의 호기심이 놀이를 멈추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메모들과 사진들을 찍으며 기록으로 남겨 본다. 혹시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면 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p><p>​</p><p>​그리고 몇 몇 학부모분들 중에서도 마치 나처럼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고 상담을 해 오기도 하고, 이런 기록들을 보고 자신의 호기심이 풀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 이야기들을 적어보며 느끼는 건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의 놀이 문화나 룰을 만든다는 것이다.</p><p>​</p><p>​누가 정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읽어내는 또래 아이들에게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다 자라고 성장한 우리들의 사고방식으로 어린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읽어낸다는 것은 새로운 배움이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자세 그리고 그것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열린 마음만 있다면, 어린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들만의 문화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머글 세계에서 온 해리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의 놀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들여다 보자.</p><p><br /></p><p><b>​</b></p><p><b>​마법의 아파트 : 어린이들의 문화코드 인정하기  </b></p><p>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145_832.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145_832.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145_832.jpg" /><br style="clear:both;" /> </p><p>담임교사와 승희 그리고 민후의 대화를 들으며 그림을 끄적이던 아이들 7명은 그 날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자기가 사는 집의 층 수를 찾기 시작하더니 ‘아파트’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똑같이 그린 그림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같은 그림을 그려 놓고는 모두 다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p><p>​</p><p><i>​담임교사 : 그걸 다음 날도 또 그리더라구요. 그거 그려서 집에 들고 가고….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다 똑같이 그린거 같지만, 자기가 사는 집을 더 예쁘게 그려요. 얘는 2층에 사는데 그래서 그런지 2층 색이 더 예쁜 거 같아요 자세히 보면 아이들마다 포인트가 있어요. 귀여워요. </i></p><p>​</p><p>​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을 모아서 집으로 보내야 하는 담임교사로서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다르게 그려보자고 했다면 아마 이런 이야기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에 대해 귀엽다고 말하는 담임교사를 보며 나는 마음 한 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p><p>​</p><p>​나는 담임교사에게… “<i>선생님~ 지금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아파트라는 똑같이 보이는 그림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장난치듯 약간 꾸며낸 이야기와 실제 사실들 그리고 아파트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끌어내서 말하고 있어요. 참 재미있네요. 그리고 선생님이 똑같은 그림 그린다고 아이들에게 한 마디라도 했다면 아마 아파트 그림 그리기는 지금처럼 유행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i>라고 이야기 하였다. </p><p>​</p><p>그 이후 아이들은 비슷한 그림들을 함께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그림 자체보다 비슷한 그림을 그리곤 그것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이야기로 만들어 내서 설명하 듯 말 해준다. 옆에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나도 비슷한 기법을 그려 넣고, 그것에 또 영감을 받은 옆에 아이가 또 영감을 받아 비슷하지만 자신의 해석이 들어간 또 다른 그림을 그려 나간다. </p><p>​</p><p>​아이들은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유사한 그림을 그려 나가며 비슷하지만 다른 그림과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그림과 스토리텔링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 놀이문화는 똑 같은 나이를 가진 옆 반이나 또 다른 유치원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p><p>​</p><p>​이 교실에 있는 특별한 승희, 민후, 채영, 민주, 재민, 서영, 수인이에 의해서 고안된 놀이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의 잣대로 아이들이 똑같은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창의적이지도 새롭지도 않다고 여겨졌다면, 이 놀이는 이 교실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들은 어린이들의 세계에 있어서 머글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아이들이 규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확실히 성인들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글 세계에서 온 해리가 마법 세계를 이해해 간 것처럼 어른들도 끊임없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아마 아이들은 우리에게 더 놀라운 마법들을 보여줄 것이다</p><p><br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200_5792.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200_5792.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200_5792.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8T21:52:3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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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영아들의 사회생활 2</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29</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4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BLUE MONDAY : 어린이들의 월요병(후편)</span></b></p><p> </p><p><i>나 : 너 비 오는 데 자동차 이렇게 꽈당 사고가 나는 거 봤어? </i></p><p><i>도현 : (교사가 말하는 동안 동시에) 토요일날 </i></p><p><i>​나 : 헛~ 누구랑? </i></p><p><i>​도현 : 엄마랑 </i></p><p><i>​나 : 지나가다가? </i></p><p><i>​도현 : 어~ </i></p><p><i>나 : (옆에 앉아 있는 지윤, 지민이를 향해서…) 얘들아~ 도현이 비 오는 날 차 미끄러져서 차끼리 꽈당하는 거 봤었대. 차 부딪쳤어? </i></p><p><i>​도현 : 어~ 나 : 차 많이 망가졌어 쪼끔 망가졌어? </i></p><p><i>​도현 : 쪼끔 망가졌어. </i></p><p><i>​나 : 아, 다행이다. 사람들 많이 안 다쳤겠네? </i></p><p><i>​도현 : 아빠 차가 긁혔어 차~ </i></p><p><i>​나 : 아, 너 네 차가 사고가 났던 거야? </i></p><p><i>​도현 : 어.. 긁혔어 나 : 차가 긁혔어? 도현 : 아니 긁혔어. 아빠차가…</i></p><p><i>(교사의 말을 다시 정정해 준다.)  </i></p><p><i>나 : (왜 정정한 것인지 이유를 몰라, 약간 조심스럽게…) 아 그랬구나. (목소리 톤을 바꾸어) 다행이다. 그래도 도현이도 안 다치고? </i></p><p><i>​도현 : 어~ </i></p><p><i>​나 : 차만 쪼끔 이렇게 까졌어?</i></p><p><i> 도현 : 어~ 어~ </i></p><p><i>​나 :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 다쳤을 때처럼 차도 약 발라주면서 아프지 마라 하면 괜찮아질 거 같아. </i></p><p><i>​도현 : 어~</i></p><p><i>​나 : 다행이다. 우리 이제 뭐하고 놀까? </i></p><p><i>도현 :  (기운없이…) 몰라 </i></p><p><i>​나 : (신념에 찬 목소리로 “어”라고 대답할 때와 달리 약간 기운 없이 “몰라”라고 말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웃으며) 모르겠어? 나도 생각 좀 해봐야겠다. 잘 모르겠다.  (목소리 톤을 다시 바꾸어 활발하게) 그럼… 우리 자동차 사고 났던 거 그림 좀 그려볼까?</i></p><p><i>​도현 : (기운차게) 어~</i></p><p>​</p><p>아이들, 특히 어린 영아들이 또래와 상호작용을 할 때 보면 가끔은 매우 아슬아슬하다. 이제 곧 한 명이 울 것만 같은 상황인데 어떨 때는 부드럽게 넘어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오늘처럼 한 명이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 명을 울렸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저런 상황을 맞이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알게 되고, 또 이런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하고 또 저런 사람에게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상황 안에서 경험을 통해 (case by case) 알아가기 때문이다. </p><p>​</p><p>​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중재와 조율과정은 매우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도현이와 상호작용을 시작할 때 ‘파워레인져’를 대화의 소재로 건넨 이유는 다름 아닌 도현이와의 공통분모로 적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시장에서 물건 하나를 고르듯 이 시기의 많은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파워레인져, 자동차, 공룡 등’과 같이 뭔가 힘있는 존재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아 본 것이다. 심지어 난 도현이에게 ‘잘 모르고 낯선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사회적인 권위를 내려놓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예절 교육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교육적이지 못한 교사였을지 모를 일이다. </p><p> </p><p>​하지만, 난 담임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조금은 자유를 누려본다. 교사 대신 말이 좀 어른이자 친구 같은 존재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면 아이들 역시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나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진짜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이나 궁금한 점들을 내게 털어놓으며 대화 상대자로서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궁금해 하기까지 한다. </p><p>​</p><p>​결국 영아들이 사회생활을 해 나간다는 것은 내용과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 성인의 사회적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인적 자원으로서 교사가 교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앎과 배움의 과정 속에서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은 교사로부터 지지와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조점을 찾을 수 있다. 지난 월요일 상큼하게 시작한 도현이의 하루가 친구들과의 또 다른 앎의 과정으로 이어졌길 바라며 다음 만남에서 도현이에게 존댓말로 이야기하자고 권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나 스스로에게 해본다. </p><p><br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026_5007.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026_5007.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8026_5007.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8T21:41:1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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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영아들의 사회생활 1</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28</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4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BLUE MONDAY : 어린이들의 월요병(전편)</span></b></p><p>​</p><p>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월요일 아침’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하게 공통된 감정이 밀려오지 않을까 싶다. 그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p><p>    </p><p>물론 성인들은 너무 오랜 시간동안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어 주말이라는 휴식시간 이후에 몰려오는 긴박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p><p> </p><p>그래서인지 어떤 이는 일요일 밤 아니 일요일 오후부터 이미 월요일을 맞이하며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어린이들에게도 월요일 아침의 시작은 언제나 활기차고 기대에 부풀어 있지는 않다. 엄마와 집에서 더 놀고 싶거나, 잠을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p><p>​</p><p>​그렇다면, 부모 모두 일하는 자녀의 아이들은 어떨까? 사실은 어떨지에 대해서는 일반화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내가 기록을 위해 나가 만났던 한 아이의 일이 부당한 사람의 일화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p><p>​</p><p>한국 나이로 4살이 된 도현이는 영아들만 다니는 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지 이제 꼭 한 달 반이 되었다. 이제 적응이 되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새로운 월요일 아침이 되자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것인지, 아니면 그날따라 어린이집이 낯설게 느껴진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몰려왔는지 엄마의 목에 팔을 감고 놓아줄 생각이 없다. </p><p>​</p><p>이런 도현이의 등장에 이미 등원을 마치고 책을 읽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 아이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교실의 문 근처로 모여든다. 아마 도현이는 이 교실의 인기가 많은 남자 어린이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관심을 교실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지만 도현이의 팔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출근을 해야 하는 엄마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도현이의 팔을 풀고 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도현이는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담임교사는 능숙하게 이런 도현이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p><p><br /></p><p><b> </b></p><p><b>​담임교사 : 도현아 머리 바뀌었네? 선생님도 어제 앞머리 잘랐는데…  </b></p><p>﻿ </p><p>​으앙~하고 울던 도현이의 표정이 담임교사의 머리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 정말 이 사람도 나처럼 머리 좀 잘랐나?’하고 살피는 듯한 표정이다. 이를 놓치지 않고 여자 어린이들은 도현이의 머리에 관심을 보인다. 도현이의 머리에 잠깐 손을 대보기도 하고, ‘머리~’하고 한 마디로 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담임교사는 도현이가 눈물을 멈추고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하자 한 걸음 물러나 이 상황을 바라보다 오전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간식트레이로 다가간다.</p><p>​</p><p>도현이는 친구들이 보이는 관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싫진 않지만, 머리를 만지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지 표정이 오락가락 한다. 그러다 한 여자 친구가 머리를 좀 세게 만지자 눈이 다기 빨개지며 곧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난 아이들의 상호작용을 지켜보다 이제 성인이 나설 때가 되었구나 싶어 담임교사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너무 분주해 보여 인사도 건네 본 적 없는 도현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p><p> </p><p><i>나 : 도현아~ 안녕~ </i></p><p><i>​너 혹시 파워레인져 좋아해? </i></p><p><i>​도현 : (약간 놀란 표정으로) 어 (도윤이는 왜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일까?)</i></p><p><i>​나 : 그렇구나. 나도 좋아하는데…. 너 어떤 거 좋아해? </i></p><p><i>​도현 : 음… (상기된 목소리가 되어 빠르게 말한다.) </i></p><p><i>​나 :오… 나도 그거 좋아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으나 맞장구를 친다.)    도현이의 표정은 약간 생기가 나기 시작한다. </i></p><p><i>나 : 근데 파워레인저 왜 좋아해? </i></p><p><i>​도현 : 멋있어~ 힘 쎄고… </i></p><p><i>​나 : 오 힘세고 멋진 거 좋아하는구나? </i></p><p><i>​도현 :  어~ </i></p><p><i>​나 : 나도 그래서 좋아하는 거 같다. </i></p><p><i>​도현 : 파워레인저가  자동차 같어 . </i></p><p><i>​나 : 응? 파워레인저가 뭐 같다고? </i></p><p><i>​도현 : 자동차 부딪힌 거 봤어.</i></p><p><i>​나 : 그게 재밌었어? </i></p><p><i>​도현 : 비가 와서…. </i></p><p> </p><p>나는 갑자기 도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을 눈치 챈 이유를 정확하게 들 수는 없지만, 도현이가 갑자기 ‘비가 왔다’고 말과 파워레인져와 잘 연결이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p><p><br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941_4528.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941_4528.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941_4528.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8T21:25:5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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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디지털 매체들과 어린이…또 다른 흑백논리</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27</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2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디지털 매체들과 어린이</span></b></p><p><br /></p><p><b>​YES 아니면 NO..? : 또 다른 흑백논리</b></p><p><br /></p><p>요즘 초,중,고등학교 교사들 연수 프로그램에는 스마트 교육이라는 것이있다고 한다. 이런 연수를 교사들에게 개설한 이유는 스마트폰과 PC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p><p><br /></p><p>학령기의 어린이나 청소년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도 디지털 기기들과 이를 통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집에서만 보던 만화를 이젠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종류의 퍼즐을 게임처럼 2차원으로 즐길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만1세 아이들도 찍은 사진들을 마치 책보듯 손가락으로 ‘샥샥’ 하고 넘겨 보기도 하고 심지어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제 이런 디지털 기기들은 아이들의 생활에 깊숙히 자리 매김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p><p><br /></p><p>하지만, 이런 기기들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부모의 마음은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다. 그리고 질문을 한다. “이걸 아이들에게 줘도 되나요? 아니면 안 되나요? 어떨까요?”그럼 난 다시 되물어보고 싶다. “제가 안 좋으니 아이들한테 그런 거 보여주지 마세요. 하면 안주실 거에요?”라고 말이다.</p><p><br /></p><p>​사실 위에 했던 말들은 나의 장난기가 발동해서 나온 말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미 정말 너무나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과 미디어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p><p><br /></p><p>​아이들과 미디어 매체 그리고 기기들은 아이들의 삶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더 많은 성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성인이 그러하듯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기기에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이런 스마트 기기들이 갖고 있는 가능성 또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p><p><br /></p><p>​그렇지만, 아이들과 디지털 매체를 동시에 떠올릴 때에는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 있다. 그 이유는 스마트 기기는 매우 스마트 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하며, 이와 동시에 우리가 기존에 하던 것들을 하지 않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p><p><br /></p><p>​우리 세대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뛰어 놀 수 있었다는 혜택이 아이들에게는 어딘가로 찾아 떠나야 만날 수 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마치 자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도 난 잘 지냈는데 라는 인과적인 추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p><p><br /></p><p>우리는 아이들이 이미 노출되어 있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살펴보고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의 “걱정”을 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걱정에 대한 생각들을 보다 공론화 시키고 함께 이야기해 볼 때 우리 마음 속에 우려와 고민들에 대한 잠정적인 해결책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p><p><br /></p><p>​새로운 기술의 발달이 언제나 그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미디어 매체나 기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성인들은 앞으로 점점 더 해야할 일들이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 나의 일 그리고 부모로서의 일,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한 목소리 등……. 이제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 보인다.</p><p><br /></p><p>​우리는 확실한 답을 원하지,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봐야 또렷한 해답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생각에 생각을 보태거나 영감을 줄 수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조율하고 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재정립해 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먼저 생각을 나누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21세기에 괜찮은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 같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니 이제 한 번 시작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p><p><br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823_1603.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823_1603.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823_1603.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5T23:21:4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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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또래관계 : 키즈카페와 친구 그리고 우정</title>
<link>https://syb.kr/bbs/board.php?bo_table=news04&amp;amp;wr_id=26</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11편.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또래관계 : 키즈카페와 친구</span></b></p><p><br /></p><p><br /></p><p><b>그리고 우정 키즈카페와 또래관계</b></p><p><br /></p><p>​유아교육을 공부한 사람답게 내 주변에는 이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친구이자 동료인 사람들과 한국의 유아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키즈카페’이다.</p><p><br /></p><p>키즈카페는 아이들과 카페의 합성어로서 엄마와 아이들의 입맛에 맞춘 메뉴를 구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론 놀이 선생님이 함께 놀이해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도심의 실내 놀이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p><p> </p><p>늘어가는 키즈카페를 보고 있으면 엄마들은 참 편리하겠다 라는 마음과 함께 마음 한 구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편한 마음이 자꾸만 불쑥불쑥 올라온다. 이 이상한 기분은 아마도 ‘도심이 날로 복잡해져 가면서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뛰어놀 수 없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구나, 놀이터를 돈을 내고 이용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p><p><br /></p><p>그런데 몇년 전 동료로부터 이유는 다르지만 키즈카페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한 번 쯤 들어보았을 이름 ‘삐뽀삐뽀 119’라는 책의 저자 이자 청소년 소아과 의사인 하정훈 선생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p><p><br /></p><p>선생님은 몇 년 전 강연에서 키즈카페에 대해 언급하며 엄마들에게 제발 아이들 부킹 좀 시키지 말라고 이야기 하셨단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많이 웃었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키즈카페에서 놀이하던 아들과 그 친구를 보면서 속상했다는 이야기도 떠오르면서 말이다.</p><p><br /></p><p>아들의 단짝 친구가 새로운 친구에게 가자 아들은 이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는지 친구에게 가서 자기와 놀자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지인은 아들에게 가서 친구도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놀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너무나 정확하고 맞는 말인데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아들이 얼마나 속상할까 하고 말이다.</p><p><br /></p><p>​사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다음엔 또래 관계는 어른들이 조절하고 정리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었다.</p><p><br /></p><p>물론, 일반적인 카페보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확보되었다는 점에서 어린이를 배려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유행처럼 새로 생기거나 리모델링한 키즈카페를 자녀를 위해 반드시 방문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실 카페는 아이들보다 성인들이 편하게 담소를 나누기 위한 공간이니 말이다.</p><p>​</p><p><br /></p><p><b>​또래관계의 또 다른 이름: 친구 그리고 우정</b></p><p><br /></p><p>‘관계’의 사전적인 의미는 ‘둘 또는 여러 대상이 서로 연결되어 얽혀 있음, 연관이 되거나 영향을 미치다’이다.</p><p><br /></p><p>​말하자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관계’인 것이다. 제목을 또래관계라고 명명했지만, 사실 관계라는 것은 어른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쉽지 않은 이슈인 것 같다.</p><p><br /></p><p>​주변에서 어떻게 해줄 수가 없고, 약간의 조언을 바탕으로 스스로 헤쳐가야만 한다는 점 또한 어른이나 아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조금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은 성인들보다 관계맺음에 대한 경험이 적고 또 그 만큼 그 안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이나 감정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p><p><br /></p><p>이런 유아기의 특성을 이해했다면 우린 아이들이 맺어야 하는 관계들에 대해서 조금 더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친구와의 즐거운 경험뿐 아니라 갈등 상황을 해소함으로서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경험은 한 개인으로서 경험해야하는 권리라고 생각한다.</p><p><br /></p><p>​한 사람과 다양한 감정들을 공유하면서 겪게 되면서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앞으로 살아갈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한 변수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어떤 관계 안에서 갈등을 경험했거나 혹은 현재 경험하고 있다면 우리는 ‘친구’라고 불리우는 ‘낯선 또래, 같은 반 친구, 옆집 아이, 놀이터에서 자주 보는 아이’와의 만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는 사람 관계에서 우리 아이 혹은 우리 반의 아이들은 어떤 깊이 있는 만남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p><p><br /></p><p style="text-align:center;" align="center"><img src="/data/editor/2402/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735_1037.jpg" title="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735_1037.jpg" alt="136a187f10cdf79d26b9aae2ff2af47f_1708067735_1037.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2018-04-05T23:03:3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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